요리를 소재로 하는 영화에는 전형적인 클리셰가 있습니다. 요리에 재능을 가진 주인공이 조력자 및 라이벌들을 만나 성장하는 과정이 나옵니다. 재료의 준비 과정부터 조리 과정, 다양한 인물들의 노력과 정성이 서사의 뼈대를 이룹니다. 마지막 순간 최대 라이벌과의 화려한 요리 대결도 빠지지 않는 클라이막스 장면이기도 합니다.
지난 8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헝거’는 흔하게 느껴질 수 있는 요리 장르에 ‘인간의 탐욕’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태국의 유명 인사들에게 대접되는 요리는 단순히 육체적인 배고픔을 해소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즉, 인간의 원초적 욕구인 ‘식욕’은 채워지더라도 ‘남들과 다른 존재’가 되고 싶은 허기는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허름한 볶음 국수 식당에서 일하는 오이를 중심으로 시작됩니다. 가난하고 평범한 일상을 살던 오이는 우연히 태국 최고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헝거’로부터 스카우트를 제의 받게 됩니다. ‘특별해지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 ‘헝거’에서 본격적으로 트레이닝을 받게 됩니다.
헝거의 대표 요리사 폴은 업계 최고의 실력으로 명성을 쌓은 베테랑입니다. 정계와 재계의 유력인사들도 그의 요리를 맛보기 위해 줄을 서고, 같이 인증샷을 찍기도 합니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유명 인사들도 폴의 요리 앞에선 사회적 체면이라는 가면을 벗어 던집니다. 폴의 요리를 손으로 집어 먹고, 접시에 묻은 소스까지 게걸스럽게 핥아 먹기까지 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맛있게 먹는 이유는 단지 그 요리 자체가 맛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최고의 요리사가 선사한 최고급 요리를 즐긴다는 사실이 그들의 내면 속 깊은 욕망을 이끌어냅니다.
즉, ‘인정받고 싶은 허기’, ‘특별한 걸 경험하고 싶은 허기’가 부자들을 폴에게로 오게 만들고 있습니다. 폴은 이를 두고 “가난한 자들은 허기를 달래려 먹지만, 음식보다 많은 걸 살 능력이 있으면 허기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헝거에서 일할수록 오이는 성공에 집착하는 인간들의 어두운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상류층은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고, 특별해지고 싶다는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법과 윤리조차 어기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깁니다. 오이와 함께 동료 요리사들도 출세를 위해 배신과 권모술수를 거리낌 없이 자행합니다.
영화는 시각적, 청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음식의 원색적인 색감과 먹는 소리를 날 것 그대로 연출함으로 깊이 감추어진 인간의 욕망을 거침 없이 드러냅니다. 음식을 맛있고 먹음직스럽게 묘사하는 일반 요리 장르 영화와 사뭇 다름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잔인한 호러 영화를 연상케 합니다. 검붉은 스테이크 소스로 범벅이 된 부자들의 모습에서 사냥을 끝내고 선혈이 낭자한 채로 사냥감을 삼키는 포식자의 모습이 떠오르게 합니다.
결국 오이는 헝거를 떠나 새로운 레스토랑을 열게 되고, 그의 스승이자 라이벌인 폴과 요리 인생을 걸고 승부를 벌입니다.
오이는 처음에는 폴과 같이 특별해지고 싶다는 열망으로 요리에 임했고, 성공을 거두었으나 진정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마음 속 허기를 달래주는 음식은 값비싼 재료로 만든 고급 요리가 아닌 할머니로부터 전수되어 내려오던 사랑이 담긴 소박한 볶음 국수 요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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